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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주택 200만 호 건설정책의 역사

📑 목차

    1. 정책의 출발점: 도시화 폭발로 인한 최악의 주택난

     

    1970년대 대한민국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동시에 진행되던 시기였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인구가 폭발하며 서울·부산·대구 등 대도시의 인구밀도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고, 주택 공급은 이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그 결과는 ‘주택난’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 판잣집·달동네의 확산
    • 무허가 주택의 급증
    • 주거 환경의 극심한 열악함
    • 아파트 공급의 초기 단계
    • 도시 인프라 부족

     

    1970년대 초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50% 이하,
    한 집에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다가구 과밀 거주’는 일상이었다.

    정책적 대응 없이는 도시 기능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주택 200만 호 건설정책’이다.

     

     

     

    1970~80년대 주택 200만 호 건설정책의 역사

     

     

     

    2. 주택 200만 호 건설정책의 공식 등장: 1972년 1차 200만 호 공급 계획

     

     

    서울시가 1972년 처음 발표한 200만 호 계획은
    박정희 정부의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과 궤를 같이하는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이었다.

     

    ◆ 정책의 핵심 목표

    • 도시에 집중된 인구의 주거 안정
    • 무허가·판잣집 문제 해결
    • 신도시 개념의 기반 마련
    • 국민주택 공급을 통한 주거기반 확립

     

    특히 이 정책을 통해 ‘아파트’가 국민 주거의 표준 모델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정책 기조는 양적 공급 중심, 즉 “일단 많이 짓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3.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2차 200만 호 정책으로의 확대

     

    1970년대 후반에도 도시 인구 증가가 멈추지 않자, 정부는 다시 한 번 대규모 건설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2차 200만 호 건설정책(1981~1986)이 발표되었다. 이 시기 정책은 전국 단위의 체계적 주택정책으로 발전하며 다음과 같은 변화가 나타났다.

     

     1) 국가주도 주택 공급체계 확립

    대한주택공사(현재 LH) 중심의 공급 구조가 자리 잡았다.

     

     2) 도시 외곽 개발·택지개발촉진법 제정

    1979년 제정된 택지개발촉진법은 신도시·대단지 아파트 공급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 법제였다.

     

    3) 아파트 대량 분양 시대의 개막

    반포, 목동, 잠실, 상계, 개포 등 지금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이 시기에 대거 조성되었다.

     

     4) 민영주택의 참여 확대

    건설사가 직접 분양하는 민영 아파트가 본격화되었다.

     

     

     

    4. 정책 집행 방식 : ‘대규모 택지 개발 + 공영·민영 아파트 건설’의 공식화

     

    200만 호 건설정책은 단순히 주택 숫자를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 도시 구조를 바꾼 전국단위 국토개발 전략이었다.

     

    정책 추진 방식은 크게 다음과 같았다.

     

    ◆  정부 주도 택지 확보

    • 도시 외곽 택지를 대규모로 조성
    • 기반시설(도로·학교·상하수도) 선(先)구축

     

    ◆  공영·민영 공동 방식

    • 대한주택공사 → 국민주택 공급
    • 민영 건설사 → 브랜드 아파트의 전신

     

    ◆  분양가 규제 도입

    분양가 안정을 위한 정책이 1980년대 본격 도입되며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주택 공급이 가능해졌다.

    이는 향후 ‘집값 안정화 정책’의 기본 틀이 된다.

     

     

     

    5. 정책 성과: 대한민국 도시 구조의 기반을 만든 역사적 전환점

     

    1) 주택보급률의 획기적 증가

    1980년대 중반 주택보급률은 70%대에 근접했다.
    이는 도시 주거 문제 완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2) 대규모 아파트 시대 개막

    아파트가 ‘중산층의 표준 주거형태’로 자리 잡은 것도 이 시기다.

     

    3) 신도시 개념의 초기 등장

    잠실·목동·반포·상계 등은 사실상 한국형 신도시 모델의 출발이었다.

     

    4) 건설산업의 성장과 부동산시장 형성

    대규모 공급은 건설업을 국가 기간 산업으로 성장시켰고, 부동산 시장의 구조가 정비되기 시작했다.

     

     

     

    6. 한계와 부작용: ‘양적 공급 중심 정책’의 그늘

     

    하지만 양적 공급에 집중된 정책은 여러 부작용도 남겼다.

     

    ◆  도시 외곽 난개발

    도시 확장 속도에 따라 교통·교육·의료 인프라가 제때 갖춰지지 않았다.

     

    ◆ 품질 문제

    초기 아파트는 자재·기술 부족으로 인해 누수, 균열 등 문제가 많았다.

     

    ◆  투기 심화

    대규모 분양이 ‘부동산 투자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투기 열풍이 증가하기도 했다.

     

     

     

    7. 결론: 200만 호 정책은 오늘날 도시 구조의 뿌리다

     

    1970~80년대의 주택 200만 호 건설정책은 단순히 주택을 늘리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 주거문화·도시구조·주택시장·건설산업의 전반을 바꾼 결정적 프로젝트였다.

     

    만약 이 시기의 대규모 공급이 없었다면

    • 서울·수도권 인구 집중의 압력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고,
    • 현재의 도시 인프라, 아파트 문화, 건설기술 발전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정책은 “주택은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가진다”는 인식을 확립했으며, 이후 1990년대 200만 호 공급, 1·2기 신도시 개발, 보금자리주택 정책 등 대한민국 주택정책의 모든 흐름을 결정한 역사적 기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