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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재건축 제도의 등장 배경과 도시정비 역사

📑 목차

    1. 급격한 도시화와 주거 불균형의 시작

     

    1950년대 이후 한국은 산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50년 1,000만 명이던 도시 인구는 1970년에는 2,000만 명을 넘어서며 전체 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도시계획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농촌 인구의 대거 유입으로 형성된 판자촌과 불법주택들은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 외곽을 가득 메웠다. 특히 서울의 경우, 청계천 주변과 용산, 영등포 일대는 ‘달동네’로 불리며 열악한 위생·치안·주거환경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주거 불균형은 단순한 인구 이동의 결과가 아니었다. 농촌의 기계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산업단지와 공장의 도심 집중, 그리고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당시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공장과 도로, 산업기반시설을 빠르게 확충했지만, 주택 건설은 후순위로 밀려 있었다.

    결과적으로 도시로 몰려든 근로자들은 비위생적이고 불안정한 주거환경 속에서 생활해야 했고, 도시의 외곽은 ‘비공식 정착지(Informal Settlements)’로 확장되었다.

     

    이 시기의 주거난은 단순한 생활 불편을 넘어 사회적 계층 분화와 빈곤 고착화의 원인이 되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정부는 “도시 미관과 주거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도시정비사업을 국가 차원의 정책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2. 1960~70년대: 청계천 철거와 도시미화 정책의 출발

     

    1960년대 박정희 정부는 도시를 ‘근대 국가의 얼굴’로 인식했다.

    당시 도시계획의 핵심은 ‘정비(Clean-up)’와 ‘개발(Development)’이었다. 청계천 판자촌 철거사업(1966~1968)은 재개발 정책의 시초로 꼽힌다. 당시 서울시는 약 7만여 세대의 판자촌을 철거하고 성북, 상계, 화곡 등에 영구임대주택을 공급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단기간의 도시 미관 개선에는 성공했으나, 철거민의 생존권 문제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즉, 도시정비는 “사회복지”가 아닌 “경제개발”의 도구로 작동한 것이다.

     

     

     

    3. 1970~80년대: 본격적 재개발 제도의 등장

     

    1976년 제정된 「도시재개발법」은 한국에서 ‘재개발’이 법적 개념으로 자리 잡은첫 사례였다. 이 법은 ‘불량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을 계획적으로 정비하여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목적을 내세웠다. 당시 서울시는 강북의 낙후 주거지를 대상으로 도심 재개발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종암동, 돈암동, 신설동, 이문동 등지에 대규모 철거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원주민의 재정착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재개발은 주거환경 개선의 이름으로 진행된 강제 이주였고, 그 과정에서 ‘도시 빈민화’와 ‘주거권 박탈’이라는 새로운 사회문제가 등장했다.

     

     

     

    4. 1980년대: 재건축 제도의 법제화

     

    재건축 제도는 기존 재개발과는 달리, 이미 형성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한다. 1980년대 중반, 강남 일대의 아파트 노후화가 진행되자 주민들이 스스로 건물을 철거하고 새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 나타났다.

     

    이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1983년 「주택건설촉진법」에 ‘재건축조합’ 개념이 도입되었고, 1987년에는 「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에 따라 공식적인 재건축 절차와 기준이 마련되었다. 초기 재건축 사업은 ‘주민 주도형 개발’로 평가되었으나, 1990년대 들어 부동산 가격 상승과 결합하면서 ‘투기적 개발사업’으로 성격이 변했다.

     

     

     

    5. 1990년대: 도시정비의 민간화와 부동산 자산화

     

    1990년대는 재개발·재건축이 민간 중심의 시장형 개발사업으로 전환된 시기였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했고, 민간 건설사들은 조합방식 개발을 통해 대규모 단지 재건축을 추진했다. 이 시기 강남, 목동, 여의도, 잠실 등 주요 지역에서 ‘재건축 아파트’가 고급 주거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① 세입자와 원주민의 퇴거,
    ② 개발이익의 편중,
    ③ 지역 공동체 해체 등의 부작용이 뒤따랐다.

     

    즉, 도시정비는 공공정책에서 자본사업으로 변질된 것이다.

     

     

     

    6. 2000년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통합 제정

     

    2003년 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은 기존의 재개발·재건축 관련 법령을 통합한 종합 법체계였다.

    이 법은 재개발, 재건축 외에도 주거환경개선사업, 도시환경정비사업 등 여러 형태의 도시정비사업을 포괄했다. 도정법의 핵심은 ‘공공성’이었다. 즉, 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자체의 인허가, 공공기관의 참여, 주민 동의율 규정(2/3 이상) 등을 통해 무분별한 개발을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조합 비리, 분양권 투기, 조합원 간 갈등 등으로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7. 2010년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와 안전진단 강화

     

    2000년대 후반 이후, 재건축 사업은 주택가격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6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도입했다. 이는 조합이 개발로 얻은 초과이익의 일정 부분을 국가가 환수하는 제도다.

     

    또한 2010년 이후에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해 무분별한 철거를 막고 구조적 안전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규제가 시장의 공급을 위축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8. 2020년대: 도시정비의 패러다임 전환

     

    최근의 재개발·재건축 정책은 단순한 ‘개발사업’이 아닌,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의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정부는 공공재개발·공공재건축 제도를 도입해 공공이 직접 참여하고, 임대주택 공급을 포함한 ‘사회적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도심, 노후주거지, 역세권 지역 등은 이제 ‘재정비구역’이 아니라 ‘생활권 중심의 재생공간’으로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도시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주거복지(Welfare), 공동체 회복(Community Rebuilding)이 새로운 핵심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9. 결론 : 공공성과 이익의 균형을 향하여

     

    재개발·재건축 제도의 역사는 한국 도시화의 역사이자 공공성과 사익이 충돌해온 긴 여정이었다. 초기의 재개발은 불량주거 개선이라는 공익적 목표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며 ‘투자’와 ‘자산’ 중심의 제도로 변질되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개발’이 아니라 ‘균형’이다.

     

    공공이익의 재분배
    → 개발이익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구조

    원주민 재정착률 보장
    → 철거가 아닌 ‘재정착형 개발’로의 전환

    도시의 역사와 문화 보존
    → 단순한 신축이 아닌, 도시 기억의 계승

    지속가능한 도시 관리체계 구축
    → 개발 이후의 삶의 질까지 고려하는 정책

     

    결국 도시정비는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설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도시는 사람을 담는 그릇이며, 그 그릇의 형태는 곧 사회의 품격이다.”